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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사진의 전시적 가치와 정치적의의

사진의 세계에서는 전시적 가치가 제의적 가치를 전면적으로 밀어낸다. 이때 제의적 가치는 무저항적으로 완전히 사라져 없어지지는 않으며, 인간의 얼굴이라는 최후의 보루 속으로 도망친다.


" 멀리 떨어져 있거나 고인이 된 사랑하는 이들을 기억해내는 제의적 행위속에서 이미지의 제의적 가치는 최후의 피난처를 발견한다 "


그렇게 인간의 모습이 사진 속에서 자취를 감춘 제의적 가치는 전시적 가치를 최초로 제의적가치보다 우위에 서기를 허락한다. 1900년경 프랑스 사진작가 '장 외젠 앗제'는 파리 거리를 사람의 자취가 없는 풍경으로 정착시킨다. 이렇게 "앗제에 이르러 사진은 역사과정의 증거물"이 되기 시작하는데, 이로서 사진의 정치적 의의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필자는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로이 관조하는 것은 더 이상 그것(사진)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사진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불안하게 해 어떠한 안정한 길을 찾아야 한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고 주장한다. 비슷한 시기에 화보 신문들이 사진에 짧은 설명글이라는 이정표를 세우기 시작했다. 회화의 제목과는 다르게, 사진의 짧은 설명글은 뚜렷한 내용을 지시하고, 이는 머지않아 영화의 성격을 설명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친다.

7. 19세기, 사진이 흔든 예술의 성격과 / 20세기, 사진과 영화의 유사성

"사진이 예술인가 아닌가라는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지혜를 기울여왔지만, ...(중략) 즉 사진의 발명에 의해 예술이라는 것의 성격 전체가 변화한 것은 아닌가라는 선결문제를 등한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의 영화이론가들의 문제제기도 이 선결문제를 유사한 방식으로 방기하고 있다."


예술의 기술적 복제가 만들어낸 예술의 기능 변화는 19세기 사람들의 시야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20세기의 영화의 발전을 체험한 사람들도 이(예술) 기능 변화를 오랜기간동안 알아채지 못했다. 예를들면 ... - 아벨강스 : 는 영화를 상형문자와 비교하고 있다. - 세브랭-마르스: 는 초기르네상스의 그리스도교적 주제들을 그린 그림을 묘사하는 듯한 말투로 영화를 논하고 있다. "이 정도로 시적인 동시에 실재적인 .... 꿈이, 과거 어떠한 예술에 주어져 있었던가! .... 영화는 전적으로 유례없는 표현수단을 내보이고, 영화의 대기권 내에서 움직이도록 허용되는 것은 가장 고귀한 사고방식을 지닌 인물들이며... " 알렉상드르 아르누: 는 무성영화에 대한 판타지를 솔직하게 ... 등, 이론가들은 영화를 '예술'의 일부로 간주하기 위해 영화 속에 제의적 요소들을 고려하고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기울이고 있고, 이 모습은 확실히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그들의 의견이 발표되던 때는 이미 영화에서 제의적 요소를 개입시키지 않는 작품들이 존재하고 있던 시대였다.

베르펠의 비유를 빌리자면, 이들은 영화를 예술의 나라 속으로 비상시키려 안간힘을 기울이고있는데, 베르펠은 그것을 방해했던 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영화가 외부세계(그럼 예술=내부세계 / 외부세계 = 현실의 풍경?) 를 그저 무미건조하게 복사한 행위에 있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이렇게 가능성을 제시했다


"영화의 가능성은 자연스러운 수단과 탁월한 설득력을 가지고서 동화적인 것, 불가사의한 것, 초자연적인 것을 표현해내는 그 유일무이한 능력에 있다."

8. 영화배우와 무대배우

배우 - 카메라 - 감독 - 편집 - 편집된필름 - 감상자(관객)


영화배우의 연기는 일련의 시각적 테스트를 거친다. 이 점이 영화배우의 연기가 기계장치를 통해 시연된다는 첫번째 귀결이다. 두번째 귀결은 무대배우가 공연 중에 연기를 관객에 맞춰가는 가능성을 상실한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이때문에 관객은 배우와 그 어떤 개인적 접촉으로부터 방해받지 않는 감식자의 태도를 갖게된다. 관객은 기계장치의 태도를 넘겨받아 직접 테스트 하는 것이며, 이는 결코 제의적 가치들로 환원될 수 있는 태도가 아니다. 그동안의 예술의 개념이 바뀌어왔던 것처럼 제의의 범주가 변한다면?

9. 영화배우는 기계장치 앞에서 연기한다.

이탈리아의 극작가이자 소설가로서 20세기 전반의 유럽 연극을 대표하는 한 사람인 루이지 피란델로는 기계장치 앞에서의 시각적 테스트, 그리고 그 성과가 배우의 연기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감지한 사람 중 하나다. 그는 자신의 소설 『촬영개시』 에서 "자그마한 기계장치가 배우의 그림자를 이용하여 관객 앞에서 유희를 펼친다. 그리고 배우 자신은 기계장치 앞에서 연기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이로서 최초로 인간은 이 인격의 아우라를 포기하는 가운데 활동해야만 하는 상태에 놓이게 되는데, 그 까닭은 아우라는 인간이 ‘지금-여기’ 에 있는 것과 결부되어있기 때문이다. 아우라의 모상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영화 스튜디오에서 관객이 있어야할 자리에 기계장치가 놓인다는 촬영이 갖는 특성으로 미루어보아, (영화)배우를 둘러싼 아우라는 탈락된다.


독일의 영화이론가이자 예슐사가인 루돌프 아른하임은 영화표현에대해 “대부분의 경우, 최대한 연기를 줄이면 줄일수록 그 최대의 효과가 얻어진다”“배우를 소도구처럼 다루고, 소도구처럼 특징에 맞게 선발하며, 또한 … 적절한 장소에 배정하는 것이 최근의 경향”이라고 말했다. 이 둘의 이야기를 빌려 저자는 카메라를 포함한 조명, 오디오장치 등 영화를 이루는 기계장치와 편집기술들을 포함해, 영화배우의 연기는 결코 하나의 통일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예술이 번성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으로 오랫동안 여겨져 왔던 '아름다운 가상'의 나라에서 예쑬이 이미 발을 뺀 상태임을 이보다 철저하게 나타내는 것은 달리 없다."

10. '유명인'과 '독자투고란'에서 엿보이는 영화의 성격, 그리고 그것이 영화는 예술의 범주에 있는지에 관한 논의에 미치는 영향

저자가 피란델로의 묘사를 인용하며 동시에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 구절은 *취조실 내부의 배우와 감시실의 감독과 배우, 그리고 그 사이에 두 공간을 구분지어놓는 기계장치라는 특수유리가 존재하는 모습을 연상케한다. 유명인의 페르소나에는 그가 기계장치앞에서 연기한 캐릭터의 페르소나가 혼재되어있다. 이때 배우에 의해 연기된 그 인격은 아우라를 갖지 않는가? 유사한듯한 그 마력은 무엇으로 대체하여 표현할 수 있을 까? 영화계는 아우라의 위축에 대항하기 위해 스튜디오 바깥에 유명인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영화 자본에 의해 스타숭배가 장려되고, 오래 전부터 인격의 상품적 성격이라는 부패한 마력이 이 유명인(의 인격)에 담긴다. 피란델로가 말한 기계장치앞에서 배우를 엄습하는 가슴 죄이는 듯한 불안은 이와 동일선 에 있으리라 추측된다. 이리하여 작가와 대중이 그 근본적인 차이를 상실하고 있다. 양자의 구별은 단지 기능상의 차이에 불과하고 경우에 따라 얼마든지 역할이 뒤바뀔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문학이 수백 년을 필요로 했던 여러 추이와 변화를 영화는 십 년 만에 실현해냈다.실현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