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아름다운 책 세미나, 2022년 6월 4일 발제
1절
기술적 복제가능성

예술작품은 원칙적으로 항상 복제 가능했다(주조와 각인, 목판인쇄, 활판인쇄, 석판인쇄 등).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 방법 중에서 특히 사진은 사상 최초로 예술가의 손을 해방시켰다. 석판 인쇄술 속에는 화보 신문의 가능성이 간직되어 있었다면, 사진술에는 유성영화의 가능성이 간직되어 있었던 셈이다. 폴 발레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손동작 하나만으로도 물이나 가스, 전류가 우리 집 안으로 공급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머지않아 연속하는 화면이나 선율을 신호와 같은 조작 하나만으로 켜고 끄는 것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1900년경에 이르러 기술적 복제는 전통적인 예술작품들 전체를 자신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고 또한 예술의 작용방식에 지극히 깊은 변화들을 가져오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예술의 기법들 사이에서 독자적인 지위를 획득한 것이다.

2절
진본성

아무리 정교하게 제작된 복제품의 경우라 하더라도 예술작품이 갖는 ‘지금-여기’라는 특성, 즉 예술작품은 그것이 존재해 있는 곳에 유일무이하게 현존해 있다는 특성이 빠져 있다. 이 유일무이한 현존성에 의해 예술작품은 역사를 갖는 것이며, 또한 세월이 흐르면서 생길 수 있는 모든 변화가 예술작품 역사의 일부이다. 변화를 추적하려면 우선 원작이 현재 있는 장소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즉 원작이 갖는 ‘지금-여기’라는 특성이 그것의 진본성 개념을 형성한다. 진본성은 위조품으로 낙인찍혀온 수공적인 복제에 대해서는 자신의 권위를 완전히 유지하는 데 비해, 기술적 복제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로, 기술적 복제는 원작에 대해, 수공적 복제보다 훨씬 높은 자립성을 지니고 있다. 둘째로, 원작의 모상을 원작 자체로서는 도달될 수 없는 상황 속으로 옮겨갈 수 있다. 즉 기술적 복제로 원작은 수용자 쪽으로 좀 더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는 작품이 갖는 ‘지금-여기’라는 가치를 저하한다. 이 가치 저하의 과정은 예술작품의 진본성을 건드린다. 즉 예술작품이 기술적으로 복제할 수 있게 된 시대에 힘을 잃어가는 것은 예술작품의 아우라이다. 복제기술은 복제품을 많이 만들어냄으로써, 복제의 대상이 되는 것을 단 한 번 출현시키는 것이 아니라 대량으로 출현시킨다. 그리고 수용자가 그때그때의 자신의 상황에서 복제품과 대면하는 것을 가능케 함으로써, 복제기술은 그 복제품을 현실화한다.

3절
아우라의 붕괴

오늘날 아우라의 붕괴는 두 가지 사정에 기초하고 있거니와, 이 두 사정 모두 현대 생활에서 대중의 의미가 점차 증대하고 있는 점과 관련되어 있다. 두 가지 사정이란 곧 이러하다. 현대의 대중은 대상들을 공간적으로 또는 인간적 관심을 끄는 쪽으로 ‘더 가까이 접근시키는’ 것을 매우 열렬한 관심사로서 삼는 동시에, 주어져 있는 모든 것의 복제를 손에 넣음으로써 주어진 것의 유일무이성을 극복하려고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아우라를 파괴하는 것은 ‘세계 내에서 평등성의 감각’을 크게 진척시키고 있는 현대 지각의 특징으로서, 이 지각은 복제라는 수단을 통해 유일무이한 것으로부터도 평등성을 획득해낸다.

4절
제의와 정치

예술작품이 유일무이하다는 것은 그것이 아직 전통의 연관 속에 묻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전통 자체는 전적으로 살아있는 것이자, 또한 변하기 쉽다. 예술작품이 전통연관 속에 묻혀 있는 원초적인 양태는 제의 속에 나타나 있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예술작품의 아우라적 존재방식이 제의적 기능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는 일은 결코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진본 예술작품의 고유한 가치는 예술작품이 최초의 본원적 사용가치를 지니고 있었던 제의 속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런데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가능성이야말로 예술작품을 세계사에서 최초로 제의에의 기생상태로부터 해방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사진은 원판에서 얼마든지 인화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과연 어느 사진이 진본인가라는 물음은 의미가 없어진다. 그런데 예술 생산에서 진본성이라는 것을 판가름하는 척도가 무효가 되는 순간, 예술의 사회적 기능 전체 또한 커다란 변혁을 겪게 된다. 예술은 더는 제의에 근거하지 않고 어떤 실천, 즉 정치에 근거를 두게 된다.

5절
제의적 가치와 전시적 가치

예술작품에 대한 수용에는 매번 다른 악센트들이 가세한다. 하나는 예술작품의 제의적 가치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작품의 전시적 가치이다. 예술생산은 제의에 이용되는 형상들을 제작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보인다는 사실보다는 존재한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제의적 가치 자체가 예술작품을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두게끔 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러 예술행위가 제의의 품에서 해방됨에 따라, 그 산물들을 전시하는 기회가 늘어난다.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의 다양한 방법들이 출현함과 더불어, 예술작품의 전시 가능성은 비약적으로 증대했다. 확실한 것은, 현재 사진과 더 나아가 영화가 이러한 인식을 위한 가장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 왕세자비가 힘들어서 가출한 이야기